미국 선크림 26년 공백 깬다, 베모트리지놀 FDA 통과 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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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크림 26년 공백 깬다, 베모트리지놀 FDA 통과 목전

By Hana · · TODAY / NBC News / Dermatolog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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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25년 12월 11일, 새로운 자외선 차단 성분 베모트리지놀(Bemotrizinol, BEMT)을 일반의약품(OTC) 선크림 성분 목록에 추가하는 행정명령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승인이 확정되면 1999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새로운 자외선 차단 성분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26년 동안 미국이 멈춰 있던 이유

현재 미국에서 사용 가능한 자외선 차단 활성 성분은 16종에 불과합니다. 유럽이 약 30종을 쓰는 것과 비교하면 미국 선크림 기술은 “수십 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베모트리지놀 자체는 유럽, 호주, 한국, 일본에서 이미 20년 이상 상용화된 원료입니다. 국내 소비자들이 일본과 유럽 선크림을 해외 직구로 선호해온 배경에도 이 성분이 있습니다.

미국이 늦은 이유는 규제 구조의 차이입니다. 유럽과 한국은 자외선 차단제를 화장품으로 분류하지만, 미국 FDA는 이를 일반의약품(OTC 드럭)으로 관리합니다. 성분 하나를 추가하려면 임상 수준의 안전성 자료가 필요하고, 1999년 이후 어떤 제조사도 그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UVA와 UVB를 동시에 막는 미국 최초 화학 필터

베모트리지놀의 핵심 가치는 단일 성분으로 UVA와 UVB를 모두 흡수한다는 점입니다. 피부 진피층까지 침투해 광노화(주름, 색소침착, 콜라겐 분해)를 유발하는 UVA와, 표피층에서 일광 화상을 만드는 UVB를 한 번에 차단합니다.

현재 미국산 화학 차단제(아보벤존, 옥시벤존, 옥티노세이트 등)는 대부분 UVA 또는 UVB 중 한쪽에만 특화돼 있어, 광범위 차단(broad-spectrum) 효과를 내려면 여러 성분을 섞어야 했습니다. 성분을 많이 섞을수록 피부 자극 위험과 알레르기 가능성이 올라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특성은 광안정성(photostability)입니다. 자외선 차단제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분해되기 쉬운데, 기존 아보벤존은 햇볕 아래에서 빠르게 분해돼 2~3시간마다 재도포가 필요했습니다. 베모트리지놀은 분해 속도가 현저히 느려 지속 시간이 길어집니다.

혈류 흡수율이 낮은 이유

뉴욕 피부과 전문의 미셸 헨리(Michelle Henry)는 “베모트리지놀은 현재 미국에서 쓰는 선크림의 빈틈을 많이 메운다”고 평가했습니다. 화장품 화학자 빅토리아 푸(Victoria Fu)도 “이 성분은 미국 선크림 산업에 거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베모트리지놀의 분자량은 약 627g/mol로, 아보벤존(310g/mol)이나 옥시벤존(228g/mol)보다 훨씬 큽니다. 분자가 클수록 피부 장벽을 통과해 혈류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FDA는 “피부 흡수 수준이 낮다”고 명시했으며, 미국 환경실무그룹(EWG)도 호르몬 교란 우려가 제기된 옥시벤존과 달리 베모트리지놀은 안전성 자료가 탄탄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피부 자극 발생률도 낮아, 징크옥사이드, 티타늄디옥사이드에 이어 6개월 영아에게도 안전한 세 번째 성분으로 분류됩니다. 화학 필터로는 미국 최초입니다.

백탁 없는 고SPF 시대

무기 차단제(징크옥사이드, 티타늄디옥사이드)는 안전성이 높지만 피부에 발렸을 때 하얗게 뜨는 백탁 현상이 단점이었습니다. 특히 한국 여성들이 선호하는 메이크업 베이스로서의 선크림 개념과 맞지 않아, 국내 소비자들은 오래전부터 일본과 유럽 선크림에 의존해왔습니다.

베모트리지놀은 화학 필터이기 때문에 발림성이 매끄럽고 백탁이 없습니다. SPF 50+ 이상의 고SPF 제형에서도 가벼운 발림감을 구현할 수 있어, 미국 시장에 “화장 위에 덧바르는” 선크림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일정과 시장 파급 효과

FDA는 2026년 1월 26일까지 공청 의견을 수렴한 뒤, 2026년 여름 또는 가을에 최종 명령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제조사들은 2026년 말부터 베모트리지놀 함유 제품을 미국 시장에 출시할 수 있게 됩니다.

미국 뷰티 시장 규모는 연간 약 900억 달러(약 130조 원)로, 이 중 선크림 시장은 22억 달러(약 3조 원) 규모입니다. 베모트리지놀 도입으로 미국산 선크림의 품질과 사용 경험이 한 단계 올라서면, 해외 직구에 의존하던 한국 소비자들의 선택지도 넓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자외선 차단제 브랜드에게는 이미 20년간 쌓아온 포뮬레이션 노하우를 미국 시장에 본격 소개할 기회가 됩니다.

여전히 남은 질문, 화학 필터의 상대적 위치

베모트리지놀이 미국 선크림의 “빈칸”을 메우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피부과 전문의들은 “새 성분이 곧 기존 성분의 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민감성 피부나 아토피 성향이 있다면 여전히 무기 차단제가 1차 권장입니다. 베모트리지놀은 메이크업 위 재도포, 야외 활동 시 지속력, 6개월~3세 유아용 광범위 차단이라는 특정 영역에서 기존 조합의 한계를 메우는 성분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20년 넘게 아시아와 유럽 소비자들이 누려온 선택지가 이제 미국에도 열립니다. 자외선이 피부 노화의 약 80%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 정교한 차단제의 등장은 단순한 제품 혁신이 아니라 피부 장기 건강 전략의 재구성에 가깝습니다.